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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뉴] STRAWBERRY LATTE
p 12+
작가정보
글/임징징이
키워드
고등학생, 원거리 연애, 원격 데이트, 문자,
달콤함, 간지러움
상세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고등학생 커플.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원격 데이트를 계획합니다.
반품 및 교환처 : 구입원 또는 판매원
보관방법: 실온보관. 직사광선을 피해 건조한 곳에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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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le.
원격데이트 Long Distance Date
유달리 더웠던 여름. 더위보다 더 힘들었던 합숙 훈련. 츠키시마의 이번 여름 방학은 더위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열혈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생각해도 모든 것이 뜨거웠던 그때. 츠키시마는 예상치 못한 것을 손에 넣었다.
손에 넣었다…는 말은 부적절한 것 같은데……. 별로 원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할까? 생겼다? 생겨버렸다?
생겨버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맹세코 관심조차 없었고 그래서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 불현듯 삶에 침투해 버린 것과 같으니까. 그래서 한편으론 당황스럽고, 여전히 어색하다.
츠키시마에게 애인이 생겨버렸다. 이상하게도 오지랖이 넓어 선뜻 블로킹 기술을 알려주고 자세를 고쳐주던 그 사람. 쿠로오 테츠로.
개인 연습을 마치고 나면 꼭 할 말이 있다며 따로 불러내어 건물 주변을 느릿느릿 산책하며 이런저런 하등 쓸모없는 말이나 늘어놓던 그의 패턴에 어느덧 익숙해졌을 쯤이다. 합숙 마지막 날이었던가. 그는 그날따라 유독 안절부절 못하며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는 사람까지 초조해지게 만들었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가요.”라고 한심하단 듯 말했더니 그런 게 아니라고 바락 성질을 내던 그는 자꾸만 츠키시마를 끌고 건물 뒤편 나무 사이로, 으슥한 그림자 아래로 데리고 갔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밤바람이 땀조차 제대로 식혀주지 못할 만큼 더웠던 날이다. 두 손을 꼭 쥔 그의 손바닥이 유독 뜨거웠던 것을 기억한다. 진지하게 저를 바라보는 두 눈도. 입술을 몇 차례 달싹이던 입에선 “좋아해.” 단 세 글자만이 튀어나왔다. 묵직한 무게감으로.
더위로 맛이 가버린 머리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다. 아마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츠키시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조금 전 들었던 말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듯 작게 한 번. 제 대답을 보여주려는 듯 크게 한 번.
좀 튕기거나 뜸이라도 들였어야 했는데. 츠키시마는 숙소로 돌아와 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을 쯤에야 조금 후회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던 제 모습이 바보 같이 느껴져 작게 혀를 찼다.
예기치 못한 연애는 그렇게 아주 간단하고 쉽게 시작되었다. 둘 사이에 오간 속삭임을 모른 체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입술이 천천히, 부드럽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이제 무를 수 없어.’ 쿠로오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계약서의 도장이라도 찍는 것 같다고, 츠키시마는 멍하게 그런 생각이나 했더란다.
계약서에 도장이라니. 역시 그렇다면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돌아가는 버스에선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물릴 생각은 없다. 입술이 자꾸만 간지러운 게 신경 쓰였을 뿐.
불행하게도 얕은 입맞춤 외엔 둘 사이에 연인 같은 접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학교, 다른 지역에 있다는 물리적 거리감 탓이다. 다만 쉼 없이 오가는 메시지 덕분에 좀처럼 공백만큼은 느낄 수 없었다.
[뭐해?]
[오늘 수업 너무 지루해]
[졸려서 눈을 못 뜨겠어]
[너 때문이니까 책임지고 잠 깨워줘]
이런 짧은 메시지가 갖가지 이모티콘에 뒤엉켜 날아온다.
[학교죠. 당신도 학교잖아요]
[집중해요, 입시생]
[그러게 일찍 자는 게 좋을 거라고 했잖아요]
[뭐래. 같이 떠들어놓고]
츠키시마의 퉁명스러운 답장도 금방금방 그쪽으로 넘어갔다.
낮에는 메시지를 주고받고, 밤이면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서로의 목소리를 귀에 담는다. 별거 아닌 행위들에도 츠키시마는 쉽사리 간지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좋다. 외로움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자꾸만 귓가며 목덜미가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츳키랑 데이트하고 싶어.」
“놀 생각만 하는 입시생.”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제가 이 동네에선 성실하고 모범적이기로 소문이 자자하다고요.」
“제가 도쿄에 안 산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고요.”
「와아- 진짠데. 억울하다, 억울해. 네가 직접 못 봐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좀 놀게 생겼다고 다들 쉽게 오해하더라.」
“놀게 생겼다는 걸 의외로 받아들였네요?”
「...부정하기엔 그 소릴 너무 많이 들었거든.」
귓가에 들리는 풀죽은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푸슬푸슬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잘 준비를 마치고 불 꺼진 방에서 이불에 몸을 돌돌 감은 채 주고받는 통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쿠로오가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면 츠키시마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무심하게 건넨다. 그래도 끝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다정하게 맺히곤 했다.
“데이트…하면 뭘 할까요?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진짜 해본 적 없어? 한 번도?」
“없다고 말했었잖아요. 왜 못 믿지?”
「사람들이 널 여태 가만히 내버려 뒀다는 게 이해가 안 돼.」
“누구랑 다르게 성실하게 학업에만 임하며 살았거든요, 저는.”
「좋아. 내가 책임지고 타락시켜주마.」
“어감이 불손해.”
귀에 바짝 대고 있던 핸드폰이 어느새 따끈한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츠키시마는 스피커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베개 맡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몸을 굴려 엎드린 채 고개를 조금 숙여 스피커에 귀를 기울인다. 쿠로오의 낮은 목소리가 기분 좋게 울린다.
“그래서? 데이트하면 보통 뭘 해요?”
「으음……. 같이 밥먹고, 영화 보고……. 수다 떨고?」
“끝?”
「중간중간 손도 잡고 뽀뽀도 하겠지.」
“역시 불손하네요.”
「하고 싶어 지지 않을까?」
“으음……. 뭐. 그렇겠죠.”
「이 정도론 불손하다고 할 수 없지. 불손한 생각은 츠키시마 씨가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으음…….”
「……? 부정을 해야지, 츳키.」
“…그런 생각 들게…했었잖아요. 당신이.”
「…자꾸 생각 나?」
“…자꾸 생각 나.”
「…너~ 가끔 엄청난 소릴 하네~」
평소보다 간지러운 이야기들이 오간다. 츠키시마는 괜히 죄없는 베갯잇만 만지작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을 혹시라도 누가 볼까 두렵다는 듯 베개에 파묻는다.
잠시 둘 사이에 흐른 정적 뒤로, 쿠로오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데이트할까?」
“…어떻게요?”
「밥 먹고 영화 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손한 건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어떻게?”
「시간 맞춰서 같이 영화 보고, 떠들고, 같은 거 먹고, 떠들고 하는 거지. 전화로.」
“원격으로?”
「응. 데이트 연습이라고 치자.」
그게 무슨 데이트냐고 핀잔을 줄 겨를도 없이 쿠로오의 들뜬 목소리가 이어졌다. 해보자. 의외로 재미있을 것 같아.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계속 떠드는 거지. 이야기할 것도 많고 괜찮을 것 같지 않아? 한껏 신난 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머릿속에서 그가 말한 장면들을 하나둘 상상해본다. 그러게. 재미있을 것 같다. 의외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요.” 츠키시마는 순순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쿠로오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원격 데이트. 그날의 제안엔 그런 이름이 붙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