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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뉴] EARL GREY
p 10+
작가정보
글/임징징이
키워드
중년, 전애인, 재회, 파트너, 현실적,
은은함
상세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츠키시마. 이젠 현실적인 파트너를 찾아야 합니다. 그 와중에 전 애인인 쿠로오를 재회합니다.
반품 및 교환처 : 구입원 또는 판매원
보관방법: 실온보관. 직사광선을 피해 건조한 곳에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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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le.
안부 인사 Hello How are you
가을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9월인 것이 무색하게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더니, 하룻밤 사이에 공기가 달라졌다. 혼란스러운 날씨에 사람들도 적잖이 당황했음을, 거리에 나와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여름을 사는 사람부터 홀로 훌쩍 늦가을로 넘어가 버린 사람까지. 혼돈이 이루어내는 색감은 꽤 다채롭다.
개중에서 츠키시마는 제법 혼란 없이 날에 딱 맞는 옷을 골라 입을 줄 아는 편이었다. 조금 덥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도톰한 가디건을 얇은 셔츠 위에 걸치면 딱 알맞다. 남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자신이 이 정도 기온에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큰 고민 없이 골라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었군. 세월의 흐름을 이런 식으로 느끼는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저 멀리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한 번화가의 거리를 걷는다. 지금은 소매를 걷어 올렸지만, 밤이 되면 제법 쌀쌀해질 것이다. 술자리가 너무 늦게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입어도 좋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서인지 거리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와 있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집에 돌아가는 길은 험난해질 것이다. 택시, 잡히려나? 그냥 차를 끌고 나올 걸 그랬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대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런 얌전한 시간에 쉬이 놔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엔.
“예약하셨나요?”
“네. 아마……. 아카아시 케이지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제법 큰 화로구이 집. 예약자의 이름을 말하자 직원이 대번에 테이블을 안내해주는 걸 보면 아마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카아시 씨겠지, 분명.
“아. 어서와, 츠키시마.”
“츳키―!!”
예약석이 있는 곳의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제 이름을 외치는 큰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츠키시마는 굉음을 밀어내려는 듯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민폐라고요, 그런 성량은.”
“너무하네!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 하는 인사가 그거라니.”
“여기 앉아. 차 끌고 왔어?”
“아뇨. 그냥 지하철. 어차피 막 먹일 거잖아요.”
“당연하지!”
아카아시와 보쿠토는 이미 맥주를 한 잔씩 시켜놓고 절반 정도 마셨다. 빠르기도 하지. 분명 시간에 딱 맞춰 왔는데.
“얼마나 일찍 온 거예요?”
“얼마 안 됐어. 더워서 맥주 먼저 시킨 거지, 뭐. 고기는 알아서 시켜놨고……. 술? 마실 거지?”
“음…….”
아카아시가 건네는 메뉴판을 슬쩍 본다. 술 종류가 꽤 많았지만, 그래 봐야 이런 곳에서 시킬 것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럼 전 이거. 얼그레이 하이볼.”
“좋아.”
마침 미닫이문이 열리며 직원이 들어온다. 주문한 고기를 테이블에 세팅하는 사이, 아카아시가 부탁받은 것들을 추가 주문한다. 얼그레이 하이볼 하나. 생맥주 하나.
“맥주? 누구 거야? 난 아직 남았어.”
“거의 다 왔으니까 시켜두래요.”
“누가 또 와요?”
“아……. 츠키시마한테 말 안 했어요?”
“응? 어어. 츳키 이 자식이 계속 튕기다가 온 거잖아. 말할 새가 없었다고.”
아아, 이런. 순진하게 ‘그게 누군데요?’하고 물어보기엔 이 반응과 이 일행이면 올 사람은 뻔하다. 아카아시가 난감한 얼굴로 츠키시마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사이, 미닫이문이 드르륵―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와― 미안. 차가 왜 이렇게 막혀? 오늘 뭐 다 나와서 노는 날인가 봐.”
“넌 진짜 양반이 못 된다. 앉아. 마침 네 얘기 하고 있었어.”
“내 얘길 왜…….”
급히 들어와 보쿠토의 옆에 앉으려던 그가 그제야 츠키시마를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찰나의 어색함이 마주한 시선 사이를 맴돈다. 무마하려는 듯 그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으나, 그 웃음이 어색함을 더 크게 자아낸다는 것은 아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아아― 오랜만이네.”
츠키시마는 꾸벅, 간단히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보쿠토가 순식간에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큰 소리로 왜 이렇게 늦냐느니 어쩌니 떠들어대기 시작한 덕분에 어색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역시 좀 곤란한가?”
“아뇨.”
아카아시가 넌지시 속삭이는 말에, 츠키시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시선은 올곧이 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향한다. 정확히는 그의 뼈마디 굵은 손가락을.
“이미 오래된 일인걸요.”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이를 마주한다는 이유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칠 만큼 츠키시마는 어리지 않다. 가슴이 아리기엔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했다. 상처가 크게 남았다 한들 그 위에 내려앉은 딱지가 스스로 떨어져 나간 지도 오래. 그저 이렇게 주변에서 ‘괜찮으냐’ 물어볼 정도의 흉터만 남았을 뿐.
다만 궁금할 뿐이다. 아무것도 없이 허전한 그의 손가락이. 아마도 이 자리에서 그의 사정을 모르는 건 나밖에 없을 테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 위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흔적을 찾아본다. 빛을 받지 못해 유독 새하얗고 가느다란 자국, 같은 거.
어떻게 된 걸까? 츠키시마는 쿠로오 테츠로의 안부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