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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의 기록

쿠로츠키 5인 오감(五感) 앤솔로지

지독한, 혹은 향기로운

w. 임징징이

여름이 싫지는 않다. 쿠로오는 꽤 여름을 즐길 줄 알았고, 여름 합숙을 빌미로 다른 학교와 교류하고 종일 배구를 하는 것도 누구보다 즐거워했으니 여름을 ‘싫지 않다’고 한다기보단 ‘좋아한다’ 쪽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냥 여름이 좋다고만 하기엔 싫어할 이유가 넘쳐나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일단 덥고, 그런 주제에 습했고, 그 덕분에 꿉꿉하기 짝이 없으니까. 그중에서도 쿠로오가 가장 진저리를 치는 건 역시 땀 냄새다. 덥고 습한 나머지 무겁게 느껴지는 공기에 가득 들어찬, 열혈 운동부원들의 땀이 모여 만든 꿉꿉한 냄새. 

쿠로오가 후각에 크게 예민한 편은 아니었지만, 남고생이 바글바글 모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운동부에서 땀 냄새 없이 쾌적하고 보송한 여름을 꿈꾸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 후각이 예민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히 배구부엔 제법 깔끔 떠는 부원들도 많았고, 합숙에선 매니저나 코치진들이 위생에도 특히 신경을 써주는 덕분에 악취가 풍길 정도로 냄새가 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더위와 습기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지만. 

다섯 개의 학교가 모여 온종일 배구 연습에 매진하는 여름 합숙은 연습 외에도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는데, 냄새와 위생에 관한 것도 그중 하나다. 자주 환기를 시키는 건 기본이고, 오전 연습이 끝난 뒤엔 연습복을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일부 부원들은 틈틈이 데오 제품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부원들도 틈틈이 몸에 물을 끼얹어가며 더위와 함께 땀을 씻어냈다. 불쾌지수를 최대한 줄여보자는 나름의 노력이다. 물론, 그래도 한계는 있다. 

“여름의 운동부라니 최악이야.”

잔뜩 늘어지는 목소리로 불만을 토하며 뒤로 벌렁 누워 체육관 지붕에 반쯤 가려진 여름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곧장 코웃음 소리가 귀에 꽂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옆에 앉은 후배는 자신이 비웃는 상대가 저보다 두 학년이나 선배라는 사실도 잊을 정도로 자신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비웃을 건 없잖아? 쿠로오는 냉큼 고개를 돌려 한심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츠키시마에게 제 억울함을 호소했다. 

“비웃다니 너무하네. 피차 생각하는 건 비슷할 거면서.”

“저는 그렇다 쳐도. 3년 넘게 이러고 있는 사람이 할 소린가요, 그게.”

“내가 3학년이고 주장이긴 해도 최악인 건 변함이 없다고. 너무 덥고 꿉꿉해.”

“그건 뭐. 같은 생각이에요.”

“그렇지?”

동의를 구하는 말에 츠키시마는 천천히 쿠로오 옆에 나란히 눕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차가운 체육관 바닥에 등을 기대면 냉기가 서서히 몸을 타고 전해져 더위를 식히기 좋았다. 낮보다는 한결 서늘해진 밤바람도 기분 좋게 코끝을 스친다. 단체 연습, 개인 연습까지 모두 끝난 뒤 부원들이 복작거리는 숙소를 빠져나와 취하는 휴식은 제법 달다.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개인 연습을 함께 하게 된 이후 휴식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잦았다. 아마 저녁 식사 이후 츠키시마가 조언을 구하고 싶다며 쿠로오를 따로 불러냈던 때가 계기였던 것 같은데, 어째선지 그 이후에도 츠키시마가 혼자만의 휴식을 위해 사람들 사이를 슬쩍 빠져나오면 쿠로오가 항상 따라붙게 되었다. 츠키시마도 딱히 크게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다. 합숙 장소의 지리에 빠삭한 쿠로오가 좀 더 조용하고 시원한 장소를 찾아준 덕분이다. 괜히 어쭙잖은 곳에 눌러앉아 있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 귀찮아지느니 쿠로오 한 명만 상대하는 쪽이 츠키시마에게도 더 나았다. 

아침에 흘끗 본 일기예보의 불쾌지수가 심상치 않더라니, 오늘은 날이 유독 덥고 습했다. 아마 내일은 비가 올 거라고 했던가? 평소보다 피로가 유독 심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아마 그 탓이 클 거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통에 아무리 몸에 물을 끼얹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셔츠를 연신 펄럭여도 더위와 습기를 몰아내는 데엔 역부족이다. 땀 냄새가 습기와 뒤엉켜 공기까지 무겁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잔뜩 허기진 부원들도 연습이 끝나자마자 샤워실로 향하는 통에 시간 맞춰 씻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다들 씻는 건 잘해서 다행이야. 숙소까지 땀 냄새로 진동했으면 최악이었을걸.”

“그래봤자 아주 쾌적하지도 않지만요.”

“이 정도면 쾌적한 편이지. 운동부치고는 말이야. 예전에 우리 학교 축구부 부실에 잠깐 갔던 적이 있었는데, 진짜 지옥이었어.”

“으…….”

“알지? 막 땀 냄새에 뭐에…….”

“너무 잘 알겠으니까 자세히 묘사하지 말아요. 상상돼.”

“걔들은 심지어 밖에서 뛰잖아? 왜 상태가 배구부보다 심하냐고.”

우린 실내 스포츠란 말이야. 한숨이 가득 섞인 푸념을 토해내며 눈을 감은 쿠로오는 팔을 들어 손등으로 눈을 가리려다 퍼뜩 놀라 몸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눈에 힘이 살살 풀려가던 츠키시마가 놀란 눈으로 쿠로오를 올려보았다. 

“왜 그래요?”

“말은 이렇게 해놓고 사실 나한테도 냄새나는 거 아니겠지?”

“뭐 그런 걸 지금 와서 고민해요?”

“민감한 문제라고. 자기 냄새는 자기가 잘 못 맡는 법이니까.”

쿠로오는 불안한 얼굴로 팔을 들어 여기저기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다행히 별다른 악취가 느껴지진 않았는데, 자기 입으로 말했듯 냄새에 적응해버린 코가 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뿐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앞선다. 갑작스레 법석을 떠는 쿠로오를 가만히 바라보던 츠키시마가 바닥을 짚은 쿠로오의 팔로 손을 뻗었다. 

“당신한테서 냄새난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

“네. 연습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지금 말고. 연습한다고 평소에도 엄청 붙어 있잖아요? 팔 줘봐요.”

츠키시마는 체육관 바닥에 누운 채 손끝으로 쿠로오의 팔뚝을 톡톡 건드려온다. 쿠로오가 순순히 팔을 내어주니 손목을 잡고 제 쪽으로 더 바짝 끌어당기더니 몸을 살짝 일으켜 손목과 팔뚝 가까이 코를 댄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숨결이 더위로 열이 오른 피부를 간지럽힌다. 괜히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쿠로오는 애꿎은 시선만 허공 이리저리 흩뿌려댔다. 

“응. 별로 불쾌한 냄새는 안 나요.”

“그건 다행이네. 본인이 알 수가 없어서 곤란하다고.”

“애초에 이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남의 냄새 맡을 일은 잘 없으니까……. 의외로 이런 거 민감한가 봐요?”

“의외라니? 엄청 신경 쓴다고. 이미지 구겨지잖아.”

“구겨질 이미지가 어디 있다고.”

“너 그거 상처야.”

“어차피 운동부라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요. 불결하지만 않으면 되죠.”

“너야말로 의외네. 난 네가 이런 데에 예민할 줄 알았는데?”

“예민해요. 포기한 거죠.”

이리저리 고개를 틀며 냄새를 맡던 츠키시마가 마침내 쿠로오의 팔을 놓아주었다.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 모습이 마치 합격 도장이라도 찍어준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난다. “왜 웃어요?” 투덜대는 목소리엔 부러 대답하지 않고 장난스레 고개만 흔들었다. 

“그래. 괜찮으면 상관없지 뭐.”

“진짜 신경 많이 쓰나 보네. 잘 보일 사람이라도 있어요?”

“뭐어…….”

흘끔 제 옆에 누운 츠키시마를 바라본다. 츠키시마 역시 쿠로오를 마주 바라보았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눈을 감는다. 감겨드는 눈을 바라보며 쿠로오는 다시 츠키시마의 옆에 몸을 뉘였다. 팔로 고개를 받치고 몸을 옆으로 돌아누운 쿠로오는 츠키시마가 그랬듯 그의 팔을 괜히 만지작거리며 어깨에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고 보면 넌 땀 냄새가 전혀 안 나는 것 같아.”

“저요? 그런가?”

“응. 땀도 많이 안 나지 않아?”

“남들보다 덜 흘리긴 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향긋한 것 같기도 한데……. 혹시 향수 써?”

“그런 거 안 쓰……. 저기. 너무 가까워요.”

“잠깐 있어 봐.”

츠키시마의 옆에 눕자마자 코끝에 은근하게 걸려드는 것은 분명 악취보단 향기 쪽에 가깝다. 얘 씻었던가? 연습이 끝나고 저녁을 먹고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다가 함께 체육관으로 빠져나왔으니 쿠로오도 츠키시마도 샤워를 할 틈은 없었다. 양치를 하고 간단히 세수야 하긴 했지만, 이건 치약 냄새는 아닌 것 같고……. 

땀 흘린 고등학생에게서 날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간지러운 향기가 코 주변을 자꾸 맴도는 통에,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츠키시마의 목덜미에 깊숙이 고개를 가져가 묻었다. 숨을 들이쉬면, 날 듯 말 듯 은은했던 향이 호흡을 타고 더 진하게 몰려든다. 비누 냄새도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살냄새. 

“…비켜요. 더워.”

“아, 응.”

제 어깨를 밀어내는 손과 조금은 딱딱해진 목소리. 쿠로오도 그제야 자신이 츠키시마에게 거의 몸을 바짝 겹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물러났다. 쿠로오의 호흡이 머물렀던 목 언저리가 영 간지러운지 목을 문질러대던 츠키시마는 그 손을 그대로 가져가 제 이마를 짚는다. 큰 손에 가려진 작은 얼굴. 그래도 가리지 못한 귓불엔 묘한 붉은 기가 감돈다. 

몸을 물린다. 향도 멀어진다. 향수보단 약하면서 쉬이 사라지진 않는 향기가.

“뭔가… 생각하던 거랑 다르네.”

“…뭐가요?”

“너한테서는 좀 달달한 향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뭐랄까…….”

“……?”

츠키시마가 제 얼굴을 가린 손을 떼어내고 쿠로오를 바라본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비난이 가득한 눈이 쿠로오에게 직접적으로 꽂혔는데, 쿠로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붙잡기 위해 머리만 굴렸다. 뭐라고 해야 하나? 향기란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이었으므로, 명확히 언어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 

“그 있잖아. 어린 애들한테서 날 것 같은…….”

“…뭐예요,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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