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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의 기록

쿠로츠키 5인 오감(五感) 앤솔로지

Milky Way

w. 카프

취미에 빠져 들기 시작하면 금전적으로도 유의미한 투자를 하기 마련이다. 츠키시마도 그런 쪽이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커다란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곡의 선율에 집중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돈을 쓰기 시작한다.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츠키시마 역시 그의 마음에 쏙 드는 음향기기를 발굴하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이어폰, 헤드셋, 스피커, 나아가 재생기기까지도 따질 만큼.

츠키시마 케이는 천성이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났다. 마음에 드는 곡을 찾아내면 그 멜로디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를 파헤치고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츠키시마는 고등학교에 다닐 즈음부터 자신이 청각에 예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구부 연습이 끝나고 돌아와, 뜨거운 물에 땀을 씻어내고 양쪽 귀를 폭신한 스펀지가 덮으면 은하수에 둥둥 떠서 밤하늘 속에 파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이올린 솔로의 선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면 어디선가 베이스가 깊게 울렸다. 어떻게 이런 화음이 어울릴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다보면 서서히 깊은 잠에 빠져들고 아침 연습을 향하는 내내 같은 곡을 듣고, 또 듣고, 다시 또 들었다. 신기하게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쯤부터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갈래가 나누어진다. 나도 이런 곡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순간 또 하나의 지평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쿠로오 테츠로가 츠키시마의 곡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노래였다. 다만 작곡가가 누구인지 몰랐을 뿐이다. 아니지. 작곡가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츠키시마 케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츠키시마는 꽤 오래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가명으로 작곡 활동을 하고 있었다. 기존의 곡을 믹싱하거나, 자작곡을 게시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뮤지션을과 협업을 하거나 친한 보컬리스트에게 피처링을 부탁한 곡도 있었다. 아마추어 치고는 꽤 유명한 반열에 들기 시작했고 쿠로오 역시 그의 곡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츠키시마의 곡은 대부분 가사가 없었다. 편안해지는 음악이나 잔잔한 음악을 모아놓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는 꼬박꼬박 그의 곡이 한두 개쯤은 섞여있었다. 그러나 막상 츠키시마의 채널에는 다양한 장르의 곡이 올라와 있었다.

쿠로오와 츠키시마가 교제를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갔다. 뒤늦게 츠키시마의 음악 활동을 알게 된 쿠로오는 서운함 보다는 호기심을 느꼈다.

함께 데이트를 다니다보면 츠키시마는 백화점이나 서점 음반코너에서 한참을 구경하는 편이었다. 쿠로오는 그동안 스포츠 잡지나 대문짝만하게 광고가 걸려있는 신작 게임들을 구경했다. 아무리 게임에 관심이 없어도 이름정도는 들어봤을 마리오나 포켓몬 시리즈 같은 것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츠키시마는 꼭 중고음반이나 쿠로오는 들어본 적 없는 뮤지션의 음반을 구매하고는 했다. 그게 단순히 감상만을 위한 소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쿠로오 테츠로가 어쩌다가 작곡가 츠키시마를 알게 되었는가. 츠키시마의 가명 활동은 무척이나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반면 쿠로오가 알게 된 경위는 맥이 빠질 만큼 허무하고 간단했다.

같은 도쿄여도 두 사람의 집은 거리가 조금 있었다. 데이트는 항상 중간 지점이나 신주쿠 같은 번화가에서 가졌다. 서로의 집에 발을 들일 일은 없다시피 했다. 

어느 날은 쿠로오가 츠키시마의 집 근처까지 갈 일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시간이 늦어져서 츠키시마의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먼저 권한 것도 츠키시마였고 쿠로오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츠키시마는 “조금 좁을 수도 있어요.” 라며 주의를 남겼다.

아무렴, 180cm이 훌쩍 넘는 초장신의 남자 둘이 있으면 4인 가구의 거실조차 비좁게 느껴지는 법이다. 쿠로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츠키시마가 주의를 줬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도. 

“실례하겠습니다아.”

쿠로오 테츠로 특유의 넉살좋은 인사가 아무도 없는 집에 울려퍼졌다. 

“집주인은 뒤에 있는데 어디에 인사하는 건데요.”

“이런 건 들어가면서 인사하는 거야.” 

그러나 츠키시마의 집은 정말로 좁았다. 온갖 음향기기와 작곡 장비, 전자 키보드, 일렉트릭 기타에 베이스까지 방구석을 빈틈없이 꽉 채우고 있었다.

“이러니까 월세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지.”

“방법이 없더라고요. 방음도 신경써야하고요.” 

츠키시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불을 켰다.

“그런데 좀... 상당히, 뭐랄까, 전문적인데?”

쿠로오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츠키시마는 항상 음악을 듣고 살았지만 악기를 연주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몇 종류야? 일단 보이는 악기만 해도 세 종류였다.

“일단 전문가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기는 해요.”

“몰랐다고!”

쿠로오는 놀란 티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몰랐겠죠. 제가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언제부터?”

쿠로오는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츠키시마의 키를 겨우 담아낼 만한 매트리스가 침대 프레임도 없이 구석에 놓여 있었다. 온갖 짐으로 집이 꽉 차 있었지만 분명히 정돈된 느낌이 강했다. 쿠로오는 스스로 느낀 그대로 이야기했다.

“나는 네가 단순히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정도라고 생각했어.”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츠키시마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꺼내 쿠로오에게 대접했다. 쿠로오는 냉장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냉장고 한 칸을 빼곡하게 채운 딸기우유팩을 보았다. 저건 작업식량이겠군. 쿠로오는 재빨리 모른 척하며 가까운 의자 아무 곳에나 걸터앉았다.

“쿠로오씨에게는 천천히 알리고 싶었거든요. 어느 정도... 실력이 생기면. 스스로 들어줄만하다고 생각되면 곡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대단한 계획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 쿠로오는 컵을 기울여 꿀꺽꿀꺽 마셨다. 보리차가 달았다.

“그런데 쿠로오씨는 이미 들어봤어요.”

“내가?”

쿠로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츠키시마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런 점이 참 신기했다. 츠키시마는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고, 구태여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반대로 드러내려고 한 적도 없는데 쿠로오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예정된 흐름이었던 것처럼. 이 공간도, 덤덤하게 작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츠키시마도, 그걸 놀라면서 듣고 있는 쿠로오 자신도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음악을 좋아하던 츠키시마의 근원이 밝혀져서일지도 모른다. 쿠로오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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