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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오사 10인 청춘 앤솔로지

Suna Rintaro X Miya Osamu Anthology

[ 폭염주의보 ]

여름의 그늘 by아만

오사무가 집으로 돌아온 건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저녁 즈음엔 비가 온다고 했었던가. 주먹에 공기를 한 움큼 담아 꾹 쥐면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습한 날씨였다. 현관을 열자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던 복도의 공기가 방 안으로 빠르게 밀려들었다.

에어컨의 전원을 켜 봤지만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땀으로 젖어버린 몸을 깔끔히 씻어 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자마자 드르륵 울려대는 핸드폰의 수신음에 오사무는 잠시 어깨를 움찔거렸다. 스나의 문자 발송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액정 위를 향하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지금이라도 못 가겠다고 할까. 고민을 거듭해보았지만 그래도 과제는 해야 했다. 스나와 오사무 간의 표면적 거리는 오사무네 집 현관문에서부터 한 걸음.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반걸음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어서 와.”

옆집 현관까지 도달하는 데 오늘은 꼬박 1시간이 더 걸렸다는 사실을 오사무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미야 오사무는 대체로 자신의 무난한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관계가 넓지는 않지만 우울할 때 함께 술을 마셔 줄 친구들도 있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면 학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에는 적당히 청춘의 한순간을 즐기는 그런 삶 말이다.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도시락 배달 아르바이트도 그럭저럭 잘 해내오고 있었다. 사장님 부부도 친절했고, 음식 맛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니 딱히 일을 그만둘 이유는 없었다.

가끔 제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로 배달을 가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우연찮게도 그날 밤의 배달지 중 하나는 자신의 옆집이었다. 그 집에 누가 살았더라? 따위를 잠시 생각하던 오사무는 곧 오토바이의 시동을 키곤 집으로 가는 익숙한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길 한 번 헤매지 않고 무사히 옆집 현관 앞에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다.

“……!”

하지만 문 안에서 적나라하게 새어나오는 야릇한 신음을 들었을 때는 제아무리 세상만사에 무덤덤한 오사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건물의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어지간히도 급했나보다. 이미 주문자가 배달 어플로 사전 결제를 한 상태이니 오사무가 저 안의 사람들을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관계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차오르는 당혹감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라.

“배, 배달 왔습니다.”

애써 침착한 척 음식 봉투를 현관 앞에 내려놓고 오사무는 황급히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단숨에 1층까지 내려왔다. 건물 밖으로 내려오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는데도, 맨살이 부딪히는 정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닌데도 괜히 뒤통수가 서늘한 느낌이었다.

사실 원룸이 즐비한 대학가 골목에서 피 끓는 성인남녀가 벌이는 애정행각은 부지기수였지만 오사무가 조금 더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에서 간간히 들려왔던 두 사람의 목소리에 여성의 것이라곤 없었으니까.

그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괜히 눈치를 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옆집은 아까의 소동이 무색하게 다시금 고요해져 있었다.

Twitter  @snos_ant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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