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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오사 10인 청춘 앤솔로지
Suna Rintaro X Miya Osamu Anthology
[ 폭염주의보 ]
열대야 by무아
해가 서쪽 끝에 걸려 하늘에는 이제 그 잔상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타는 듯한 열기가 살갗에 들러붙어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폐부에 가득 찼다가 빠져 나가며 몸 안에 덥고 끈끈한 자취를 남겼다. 목덜미를 타고 쉬지 않고 땀이 흐른다. 바이크 핸들을 쥐고 있는 손 안쪽까지 땀으로 미끌미끌했다.
연일 기록에 남는 폭염이다. 도로 위는 지옥이었다. 아스팔트 위로 피어난 아지랑이와 러시아워의 정체된 차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매연은 특히 무방비 상태인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치명적이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거북이보다 느리게 전진하는 앞차를 보며 차라리 갓길에 바이크를 대고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거란 생각을 했다. 일 초라도 빨리 티셔츠를 벗고 피부에 철썩 달라붙은 이 끈적한 불쾌감을 씻어내고 싶었다.
평소 5분이면 도착하던 거리를 15분이 더 걸려서 도착했다. 연식이 오래된 바이크를 구석에 세워두고 가게로 들어갔다. 말도 없이 늦은 사장 때문에 30분이나 초과 근무를 한 아르바이트생을 돌려 보내고 가게 팻말을 'close'로 돌려 놓았다. 간단하게 바닥을 쓸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앞치마를 벗어 카운터 아래 칸에 넣어두고 매출 내역을 확인하는 걸 마지막으로 가게 셔터를 내렸다.
'미야 오니기리'
나무판자 위에 철제 글씨가 덧대어진 간판은 투박하지만 정겨운 맛이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즐비한 도심에서 조명도 대지 않은 빈티지 풍 간판은 해가 저물면 가게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애초에 프랜차이즈를 목표로 잡고 시작한 가게도 아니고 어디를 봐도 자신에게는 세련되고 정제된 것보다는 튼튼하고 조금은 촌스러운 게 어울렸다. 그래서 가게 주인, 미야 오사무는 저 간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올해로 가게를 열게 된 지 꽉 채워 5년이었다. 돛대 끝에 꿈이란 깃발을 단 오사무의 쪽배는 순조롭게 항해 중이었다. 입김만 닿아도 기우뚱거리던 시절은 지났다. 몇 년 간 꾸준히 같이 한 거래처, 동생 같은 알바생, 동네에서 마주치면 아는 척하는 단골들 전부가 이 배를 여태껏 운항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원동력이었다. 단순히 밥이 좋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장사란 결국 사람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그들은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됐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오사무는 관계에 대한 많은 걸 배웠다. 세상에는 친구와 가족 이외에도 이렇게나 많은 관계가 있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오사무는 주먹밥을 팔았지만 주먹밥의 값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받았다.
좋았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좋았다. 가게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무더위를 헤치며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기울었다 다시 서고 멈추었다 다시 전진하면서도 제법 행복에 가깝게 가고 있었다. 확실히 시간이 약이었다.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일단 들어와라."
이대로 집 앞에 사람을 세워두기도 뭐했고 무엇보다 이 밤중에 환자를 맨몸으로 내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문득 병원을 먼저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오사무의 심중을 읽은 듯 스나가 말을 가로챘다.
"너…."
"병원까지 갈 일 아니야. 그냥…단순한 타박상이니까……."
오사무는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가 찢어지고 볼에는 푸르스름하게 멍이 올라온 그의 얼굴은 기억 속보다 날카롭고 야윈 느낌이었다. 반항기 비행소년도 아닌데 양아치라도 만났는지 뒷골목에서 구르다 온 몰골이었다. 내일모레면 나이가 서른 줄에 들어가는데 대체 누구한테 맞고 왔느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스나를 집으로 들여보냈다. 그가 벗은 흙투성이 운동화가 현관에 나뒹굴었다. 오사무는 신발을 한구석에 밀어 두고 뒤이어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 거실에 서 있는 스나가 고전 명화들 사이에 낀 팝아트처럼 이질적이라 그를 앞에 두고 말문이 막혔다.
"…아, 앉아라."
"고마워."
"약 찾아올게."
구급함이 안방 어딘가에 있을 거였다. 반사 신경이 좋아서 어지간하면 실생활에서 다치는 일이 없는지라 구급함을 찾는 건 이사 온 뒤로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약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저번에 구급함을 찾았던 건 스포츠 테이프를 찾기 위함이었다.
막 안방으로 향하는 오사무의 발걸음을 붙든 건 스나의 조그마한 목소리였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얼핏 잘못 들었나 헷갈리게 만들었다.
"오사무."
"어?"
"……."
"…나 불렀나?"
아니었나? 잘못 들은 건가?
"나 이혼했어."
Twitter @snos_anthology